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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가본고신

간장외과 분야 개척자일생 인술 '한국의 슈바이처'[부산일보,05.9.28] 등록자 : 운영자 / 등록일 : 2005.10.21 pm 03:20:04 / 조회수 : 4619
[내고장을 빛낸 과학인물]< 8 > 장기려
간장외과 분야 개척자일생 인술 '한국의 슈바이처'
간 대량절제술 국내 처음 선보여 부산·경남 민물 간디스토마 구제


'한국의 슈바이처.' 오직 인술(仁術)을 베푸는 일을 천직으로 여긴 성산(聖山) 장기려(1911~95) 박사. 그는 또 우리나라 간장외과의 개척자이며 태두이기도 하다.
지난 1996년 장기려기념 간연구소를 만든 고신대 복음병원 이충한(일반외과) 교수는 "장 박사님은 평생동안 초인적인 박애와 봉사의 삶을 실천했고 특히 의학 분야(간장외과)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겨 부산을 빛낸 과학인물"이라고 밝혔다.
장 박사가 간 연구에 본격적으로 나서게 된 것은 지난 58년 부산에서 개최된 제10회 대한의학협회 외과평의회로부터 간장 및 담도계 숙제보고를 맡게 되면서부터이다. 당시 간장외과 분야는 전혀 손을 댈 수 없었던 미개척지. 간 질환에 걸리면 얼굴이 누렇게 뜨고 배에 물이 차는 고통 속에서 죽는 날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실정이었다.
이 교수는 "당시 국내 외과 수준은 위나 소장,대장 수술은 선진국을 어느 정도 따라갈 수 있었지만 간장외과 분야는 전혀 손을 댈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특히 부산·경남지역에는 낙동강 민물고기 섭취로 인한 간디스토마를 비롯해 간 질환으로 고통받는 환자가 많았다고 한다.
외과평의회로부터 숙제보고를 맡게 된 장 박사는 1년여의 노력 끝에 59년 간암 환자의 간 대량절제술(간 우엽절제술)에 성공,국내 외과학에서 미개척분야였던 간장외과 발전에 돌파구를 마련했다. 당시 간 대량절제술에 성공한 날을 '간의 날'로 정할 정도였다.
이 교수는 "장 박사님의 간의 혈관과 미세구조 등에 대한 연구업적으로 당시 간 수술 시 출혈에 대한 공포를 없애 많은 간질환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었다"고 설명했다.
장 박사의 연구업적이 널리 알려지자 전국의 간 환자들이 '장기려 박사에게 한번 가보고 죽겠다'며 몰려들기 시작했다. 장 박사는 간 연구의 공로로 61년 대한의학협회 학술상(대통령상)을 수상했으며 68년 한국간연구회가 창립되고 초대회장을 맡았다.
부산의 향토사학자인 최해군 부산시사편찬위원은 "고신대 복음병원이 외과 분야에서 탁월한 명성을 떨치게 된 것도 장 박사의 업적 때문"이라고 밝혔다.
장 박사는 1911년 8월 14일 평안북도 용천군에서 태어나 28년 송도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경성의학전문학교에 진학했다. 의사가 되어 가난한 사람들이 현대의료의 혜택을 골고루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 보리라는 생각이었다고 한다.
졸업 후 백병원의 백인제 박사 문하에 들어가 외과를 전공하고 40년 일본 나고야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47년 1월 김일성대학의 외과대학 의학과 교수 겸 부속병원 외과과장으로 일하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가족을 평양에 남겨둔 채 차남만 데리고 남하했다. 그러나 이것이 가족과의 영원한 이별이 되고 말았다.
부산 제3육군병원에서 외과의로 근무하던 중 용공 혐의로 잡혀갔다 주위의 도움으로 풀려났다. 51년 6월 영도구 남항동에 천막병원을 차려 무료 진료에 나섰다. 이것이 바로 복음병원의 시작이었다. 68년 동구 초량동 복음병원 분원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순수민간단체 의료보험조합인 청십자의료보험조합을 발족했고 75년 직영 청십자의원을 개원했다.
장 박사는 79년 8월 그가 일생을 두고 펼친 봉사활동의 공로로 막사이사이 사회봉사상을 수상했으며 95년 12월 향년 85세로 끝내 두고온 가족을 그리며 인술,봉사,박애,무소유의 삶을 마감했다.
이 교수는 "올해는 장 박사 서거 10주년으로 부산외과학회와 함께 장기려의학상 제정 등 기념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임원철기자 wclim@busa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