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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질병정보

진료현장 이야기 [혈액종양내과]
돌이켜 보면서 그동안 많은 눈물을 보았다는 생각이 든다. 최종 진단이 나온 후 가족에게 얘기해 줄때, 치료도중 환자가 힘들어 할 때, 그리고 환자가 우리 곁을 떠날 때 그들은 눈물을 흘린다. 의사들은 애써 외면한다. 그리고 마음에는 그림자가 한번 더 지나간다.
혈액종양 내과를 시작하면서 처음부터 각오는 했지만 쉽지 않았다. 지금도 절망적인 말은 하기가 쉽지 않다. 환자에게는 희망의 말을 하면서 예견된 절망을 앞질러 경험하면서 마음을 졸이고 의사로서 안 되는 상황을 하나님의 기적이라도 만들어 주시지 않을까 기도하는 마음으로 환자의 손을 잡는다. 학교 다닐 때 어느 교수님으로부터 의사는 제삼자의 입장에서 환자의 처지를 예상하고 염려하는 Sympathy (동정)를 가지지 않고 Empathy (감정이입)를 갖고 환자를 치료하여야 한다는 말씀을 들었다. Empathy는 당사자의 고통을 완전히 이해하고 본인이 환자와 동일하다고 생각하고 진료에 임해라 하는 뜻 이라고 받아 들였다.
급성 백혈병환자가 왔을 때, 처음 진단하고 치료에 들어갈 때는 완치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의사들은 한사람이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기쁘게 치료를 시작한다. 그러나 치료를 잘 받고 잘 지내던 환자가 재발했을 때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앞으로 어떤 과정을 겪을지 정말 할 말을 잃게 된다. 지속되는 병마와의 싸움에 오랫동안 같이 겪어야 하는 세월 때문에 벌써 empathy에 빠져든다.

지금은 다른 세상에 가버린 유난히 기억에 남아있는 사람이 있다. 29살이 아주 잘 생긴 청년이었다. 5년 동안 입원과 퇴원을 하면서 정이 많이 들어버렸는지 아니면 그가 가졌던 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가 마음속에 짐이 돼서 한쪽 가슴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급성 림프아구성 백혈병으로 진단받았고 관해 치료를 별 어려움 없이 잘 받아냈다. 관해 치료를 하고나서 골수 이식을 하자고 했더니 집안사정을 얘기했다. 아주 어렸을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지금 가족은 새어머니고 형제들은 피를 나눈 형제가 아니란다. 그래서 자신을 살갑게 여기지도 않고 골수를 받을 수도 없기 때문에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고 했다. 어렸을 때부터 이런저런 눈치보고 살다가 빨리 가족과 떨어져 살고 싶어서 일찍 장가를 갔고 벌써 초등학교를 다니는 딸이 있단다. 그래서 경제적으로도 많이 어렵고, 자신은 골수이식을 받지 않아도 오래 살 자신이 있다고 하면서 오히려 나를 위로했었다. 그의 젊고 예쁜 아내는 살갑게 간호를 아주 잘 하였다. 비록 몸이 아파서 병원에 자주 다녀야 하고 계속 약을 먹여야 하는 상황인데 아주 밝고 행복해 보였다. 2년 반 동안 1개월에 한번 씩 외래에 와서 약을 받고 3개월마다 정기적으로 골수 검사를 받고 하는 동안 집에만 있기가 무료해서 6개월 전부터는 직장에 다녔단다. 전에 다니던 자동차 정비 공장이었다. 좀 더 쉽고 환경이 좋은 데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라고 충고 했더니 자기가 가진 재주는 그것뿐이라고 우겼다. 별로 힘들지 않고 동료들이 많이 배려 해주고 해서 오히려 일 하는 것이 더 마음도 편하고 즐겁다고 했다. 한번은 어제가 생일이였는데 나 때문에 자기가 살 수 있었다고 생일 케익은 내가 먹어야 한다면 외래에 들고 왔다. 고마워서 눈물이 나는데 그들이 믿고 있는 의사라는 것 때문에 그냥 삼키고 강한 척 하느라 혼났다. 3년 째 되던 해 혈액 검사에서 갑자기 백혈구가 증가하고 혈소판이 약간 감소하였는데 재발이 된 것 같아 골수 검사를 권하였다. 환자는 아무것도 모른 채 의례하는 골수 검사려니 하고 아무런 저항없이 골수 검사를 했고 결과는 예상대로 백혈병 재발이었다. 항암치료를 하자는 말에 순순히 잘 따랐고 다행히 2차관해도 성공적으로 되었다, 그러나 그리 오래지 않아 다시 재발하였다.
여러번 반복하여 입원하고 항암치료를 받는 동안 한번도 나를 향해 짜증을 부리거나 싫은 소리를 하지 않았다. 어느날 회진 시간외에 조용히 혼자서 병실에 들렸다. 그의 아내와 둘이서 기도를 하고 있었다. 같이 기도를 했고 마지막 기도에 그는 나를 걱정하면서 본인이 사망하게 되더라도 내가 힘들어하지 않고 다른 환자에게 자신 있는 진료를 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하였다. 결국 나도 그 기도에 눈물을 흘리고 말았지만, 그 이후로 의사는 환자에서 위로를 얻는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지금도 나는 여전히 환자에게서 위로를 받고 있다. 그는 마지막까지 마약진통제에 의존하여 고통을 이겨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병실에 들르면 희미한 미소를 보였다. 결국 그는 세상에 미련이 없는 듯 유년시절의 고통도 보상받지 못한채 그의 2세와 아내를 남기고 하나님 곁으로 갔다. 그가 떠나가고 약 6개월 정도 있다가 그의 예쁜 아내가 장미꽃 한 다발을 들고 아이들과 함께 외래로 찾아왔다.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한달전부터 직장을 다니기 시작했고 이제부터 더 씩씩하게 살겠다고 그동안 감사했다고 인사를 했다. 진료실에 나를 남겨두고 나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먹먹했다.
살아갈 날이 아직 많이 남아있는 젊은 환자가 오면 나도 모르게 기도하던 그의 모습이 떠올려지고 최선을 다해 치료해서 다시는 상처 입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야만 스스로의 위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환자들은 잘 모른다. 의사들도 사람이라는 것을...
의사들은 환자를 대할 때 상당히 사무적이고 객관적으로 다루기 때문에 냉정하다고 여기지만 많은 환자에 대한 Sympathy를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보 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의사들은 동정심대신에 Empathy를 가지려고 노력한다.